일본의 차 산지라고 하면, 시마네현을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솔직히 저희도 마찬가지였어요. 시마네에서 이런 차를 만드는 분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순수하게 놀랐어요.

한마디로 표현하면, "감칠맛의 차." 혀 위에서 부드럽게 퍼지는 단맛과 감칠맛, 군더더기 없이 깨끗한 향. 다른 산지 어느 곳과도 닮지 않은, 조용하고 따스한 맛이에요.

이번에 저희가 찾아간 곳은 시마네현 이즈모시에서 차를 만드는 이즈모세이차(出雲精茶)예요.

12초보, 동해 바다를 마주한 찻밭

시마네현 이즈모시의 넓은 찻밭 전경

동해(일본해)를 마주하고, 남쪽으로는 주고쿠 산지가 펼쳐진 산인 지방. 겨울에는 눈이 많이 쌓여요. 연간 일조 시간은 가고시마보다 약 300시간 짧아요. 차 재배가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적합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환경이에요.

그런 이즈모시에서 12초보(町歩)라는 광활한 면적에 차를 재배하고 있는 곳이 이즈모세이차예요. 12초보면 도쿄돔 약 2.5개 분량. 시마네현 최대 규모의 차 생산자예요. 저희가 아는 생산자분들 가운데서도 이 정도 스케일로 차를 만드는 곳은 손에 꼽히는데, 일본 차 농가 1가구당 평균 경작 면적이 2.7초보라는 걸 생각하면 그 규모가 짐작이 돼요.

전직 TV맨이 만드는 차

이즈모세이차 대표 오카 유타 씨

이즈모세이차를 이끄는 건 당시 34세의 젊은 생산자, 오카 유타(岡祐太) 씨예요. 2021년 기준이에요.

한때 도쿄에서 TV 프로듀서로 일했어요. 몇 년간 미디어 현장에서 경력을 쌓은 뒤 이즈모로 돌아와 차 만들기를 시작했어요. 취임한 지 1년 남짓. 12초보의 밭과 가공 공장, 그리고 팀을 전부 이끌고 있어요.

이력만 들으면 극적으로 느껴지지만, 오카 씨 본인은 담담해요. 들여다보면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는 듯이.

스마트하고, 그리고 스토익하게

오카 씨의 데이터 기반 재배 방식

이즈모를 방문하기 전, 도쿄에서 오카 씨를 한 번 만난 적이 있어요. 그때 제가 받은 인상은, 차 만들기와 경영 모두에 매우 스마트한 사람이라는 것.

"올해 기후가 2010년이랑 거의 비슷해서, 맛있게 나올 거라고 생각해."

"엽록소 측정기 써서 피복 기간을 판단하거든."

매년 기후와 찻잎 생육 데이터를 기록하면서, 경험이나 감각에만 의존하지 않는 재현 가능한 차 만들기. 그 자세에서 오카 씨가 어떤 방식으로 차와 마주하는지가 보여요.

이즈모세이차의 데이터 기반 재배 현장

"그렇게 안 하면 젊은 직원들한테 아무것도 남겨줄 수가 없거든. 다음으로 이어지지 않으니까."

후계자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은 일본 차 업계에서, 이런 사고방식이 얼마나 귀한지는 말할 필요도 없어요.

차 업계 밖에서 일한 경험 때문인지, 오카 씨는 생산자이면서 동시에 유능한 경영자라는 인상을 저는 받았어요.

그런데 실제로 이즈모에서 밭과 공장을 둘러보고 나서, 그 인상이 조금 달라졌어요. 스마트한 것만이 아니었어요. 맛있는 차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절대 타협하지 않는, 거의 집요하다고 할 만큼 스토익한 사람.

감칠맛을 만들어내는 피복 재배

검은 차광막으로 덮인 이즈모세이차 찻밭

마침 피복 작업이 한창인 밭이었어요. 검은 차광막으로 이랑을 덮고, 1~2주간 햇빛을 차단한 상태로 재배해요.

피복 재배, 일본어로 '가부세(被せ)'라 하는데, 목적은 크게 두 가지예요. 하나는 햇빛을 차단해서 테아닌(감칠맛 성분)이 카테킨(떫은맛 성분)으로 변하는 것을 막고, 찻잎에 감칠맛을 머금게 하는 것. 다른 하나는 적은 빛에서 광합성을 시킴으로써 엽록소를 늘려, 찻잎을 짙은 녹색으로 만드는 것이에요.

피복 재배로 짙은 녹색이 된 찻잎

피복을 시작한 지 1주일 정도 된 찻잎. 일반 새싹보다 색이 훨씬 짙고 선명해요.

교쿠로나 말차 원료인 텐차(碾茶) 같은 고급 차를 만들 때 쓰는 기법인데, 일반 센차에서도 감칠맛과 색을 조절하기 위해 피복을 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데 이 피복이라는 작업, 정말 손이 많이 가요. 무거운 차광막을 밭에 씌우고, 매일 상태를 확인하면서 적절한 피복 기간을 판단하고, 수확 전에 다시 전부 걷어야 해요. 오래 쓴 막은 닳고 해져서, 손으로 직접 수선하기도 해요.

이랑 하나의 길이는 약 50m. 10이랑이 모여 1단(反), 10단이 모여 1초보(町歩). 1초보 전부를 피복으로 만들려면 50m짜리 차광막이 100장 필요한 거예요.

이 피복을 8초보, 그러니까 총 면적의 3분의 2 넘게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정말 아득해지는 느낌이었어요.

단 한 장도 잎에 닿지 않게

아치 위에 차광막이 걸린 찻밭

이즈모세이차의 피복은 규모만이 아니라, 방식에서도 놀라워요.

이랑을 따라 초록색 아치가 설치되어 있고, 그 위에 차광막이 얹혀 있는 형태예요.

보통은 차광막을 찻잎 위에 직접 씌우는 경우가 많아요. 당연히 그 편이 손도 적게 들어요. 하지만 차광막이 잎에 닿으면 잎이 마찰로 딱딱해지거나, 새싹이 곧게 자라지 못하거나, 비닐 냄새가 잎에 배는 문제가 생겨요.

그래서 아치를 세워 차광막이 잎에 직접 닿지 않도록 해야 하는 거예요. 이전 세대에서는 직접 씌우는 방식이었지만, 오카 씨 대에 와서 대부분을 아치형으로 바꿨어요.

이 규모에서 이 정도의 수고. 이즈모세이차의 차가 가진 감칠맛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한 면을 엿볼 수 있었어요.

한없이 부드럽고, 한없이 깊은 맛

"차라도 한잔 할까."

밭을 둘러본 뒤, 오카 씨의 그 편안한 한마디에 이끌려, 방금 전 보고 있던 밭에서 만든 차를 마셔보게 되었어요.

이즈모세이차가 재배하는 품종은 야부키타를 비롯해 오쿠미도리, 사에미도리, 사키미도리 등 향에 잡내가 없는 품종이 대부분이에요. 어느 것이든 피복을 해도 향을 해치지 않고, 오히려 감칠맛이 더해져 맛있어지는 품종들.

추위가 매서운 산인 지방에서는 재배할 수 있는 품종 자체가 내한성이 강한 것으로 한정돼요. 결국 이 환경, 이 품종으로 최대한의 개성을 끌어내기 위해 지금의 스타일에 이르렀어요.

"약소 산지는 그렇게라도 해야 되니까. 차별화라고 할까."

이날 마신 '이즈모차 키와미(出雲茶【極】)'는 사에미도리를 바탕에 야부키타와 오쿠미도리를 배합한, 이즈모세이차 최고 등급의 센차예요. 입안에서 감도는 부드러운 질감. 은은하게 퍼지는 감칠맛과 단맛. 떫은맛도 쓴맛도 거의 없고, 잡내 없는 깨끗한 향과 함께 즐기는 둥근 맛. 저는 한 모금 마시고 나서, 이즈모라는 산지에 가졌던 선입견이 조용히 무너지는 걸 느꼈어요. 고급차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한 잔이었어요.

최근 십여 년간 일본 차 시장의 트렌드는 후카무시(深蒸し) 제법으로 떫은맛을 줄이고 탕색을 짙게 하는 것이었는데, 이즈모세이차는 거기에 감칠맛이라는 무기를 하나 더 얹었어요.

맛의 이면에 있는 것

찻밭에서 일하는 오카 유타 씨

"좋은 거 만들려면 손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지."

함께 밭을 걸으며 오카 씨가 해준 말이에요.

이 광활한 밭과 방대한 수고를 직접 보고 나니, 그 말이 오카 씨 깊은 곳에서 나온다는 게 느껴졌어요.

재배, 가공, 유통. 생각해야 할 일은 끝이 없고, 게다가 대표직을 맡은 지 겨우 1년. 정신없이 바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도, 오카 씨의 말에서는 타협 없이 차와 마주하는 힘이 느껴져요.

전직 TV 프로듀서라는 이례적인 이력을 가진 사람이기에,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 본질적으로 얼마나 어려운지를 몸으로 알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직접 각지를 돌며 영업도 하고, 매일 밭과 마주하며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나날.

늦봄 밭에 돋아난 작은 새싹

방문한 날은 화창한 봄 햇살에 겉옷을 벗고 싶어지는 따스한 날씨였어요. 다른 산지에 비해 천천히 자라는 이즈모세이차의 첫물차는 아직 막 움트기 시작한 작고 여린 새싹뿐. 연두빛이 봄 햇살을 받아 빛나고 있었어요.

올해 차는 작년보다, 내년 차는 올해보다 더 맛있을 거라는 생각. 오카 씨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그렇게 믿지 않을 수 없어요. 이런 생산자를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 저희에게는 정말 기쁜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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