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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는 다양한 도자기가 있지만, 그 가운데 '차'와 특히 깊은 인연을 지닌 하기야키를 소개하겠습니다.

하기야키란?

하기야키는 야마구치현 하기시를 중심으로 생산되는 도기로, 전통적 공예품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다도용 도자기(茶陶)로 발전해 온 하기야키는 '이치라쿠 니하기 산카라쓰(一楽二萩三唐津)'라는 찬사를 받아 왔습니다. 이는 다인들이 다완을 선호하는 순서, 또는 격을 나타내는 말로, 하기야키가 예로부터 얼마나 높은 평가를 받아 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특징

하기야키는 사용하는 점토와 제작 과정의 영향으로 도자기 표면에 무수히 많은 미세한 균열이 생기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 균열을 '간뉴(貫入)'라 합니다. 오래 사용하면 차 등의 성분이 간뉴에 조금씩 스며들어 다기의 색감과 분위기가 서서히 변해 갑니다. 다인들 사이에서는 이 현상을 '차나레(茶馴れ)' 또는 '하기의 일곱 번 변신(萩の七化け)'이라 부르며,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다른 표정을 보여주는 다완으로 소중히 여깁니다.

또한 하기야키에는 100곳이 넘는 가마가 있지만 대량 생산을 하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의 가마가 소규모로, 작가로서 활동하고 있어 일품(一品物)이 많다는 점도 하기야키의 특색입니다.

차도용 도자기로 친숙한 하기야키는 소재 자체를 살린 소박한 작품이 많아, 색을 입히거나 장식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그 덕분에, 점토의 상태나 그날의 기온과 습도, 소성 과정에서 나타나는 색감과 무늬의 변화를 뚜렷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다양한 무늬와 색조 가운데 마음에 드는 한 점을 찾는 시간은 애호가들에게 즐거운 순간입니다.

다른 도자기에 비해 관리에 조금 더 손이 가지만, 정성을 들여 조금씩 자기만의 그릇을 만들어 가는 이 과정이야말로 하기야키의 매력이자 특징입니다.

하기야키의 역사

하기야키의 역사는 4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하기야키가 탄생한 에도 시대 전기

당시 일본에서는 '도자기 전쟁'이라 불릴 만큼 다완 열풍이 불고 있었고, 각지의 다이묘들이 앞다투어 조선에서 도공을 데려왔습니다.

사실 하기야키의 시조는 일본인이 아니라 이 시기에 일본으로 초빙된 조선인 도공 이(李) 형제입니다. 이 형제는 다이묘이자 다인이었던 모리 데루모토(毛利輝元)의 휘하에서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했고, 이것이 훗날 하기야키로 이어집니다.

차도 도자기 외의 작품도 만들기 시작한 메이지~쇼와 시대

메이지 시대에는 여러 상을 수상하고, 오모테센케(表千家)와의 유대도 깊어지면서 그 지위를 확립합니다. '이치라쿠 니하기 산카라쓰'라는 말이 생겨난 것도 이 무렵입니다.

그러나 당시 일본은 불황이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하기야키는 기존의 차도 도자기뿐 아니라 일용품과 해외 관광객을 겨냥한 장신구 등도 만들기 시작합니다.

전후부터 현재까지

전후 일본 경기가 호전되면서 하기야키뿐 아니라 도자기업계 전체가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도자기 붐이 다시 일어나 전국에 많은 가마가 생겼습니다.

이 무렵부터 하기야키에서는 개인 작가의 도예 활동이 활발해졌고, 현재는 차도 도자기는 물론 일본을 대표하는 도자기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