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의 카리스마 다인(茶人) 센노 리큐(千利休). 리큐는 평생에 걸쳐 무엇을 추구했고,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다양한 일화를 통해 이 전설적인 다인의 일생을 함께 더듬어 봅니다.
센노 리큐의 일생
센노 리큐(千利休, 1522~1591)는 사카이의 부유한 상인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사카이는 무역으로 번영하며 상인들이 자치를 이루던 도시였습니다.
리큐는 17세에 차를 배우기 시작하여 다케노 조오에게 사사합니다. 상인으로서 가업에 힘쓰며 부를 쌓는 한편, 차의 길을 추구하며 쇼레이 소킨에게 선(禪)을 배웠습니다.
리큐가 50세 무렵, 오다 노부나가가 사카이의 재력에 주목하여 직할지로 삼고, 리큐와 다른 2명을 '사토(茶頭, 차의 스승)'로 기용합니다. 노부나가 사후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섬기게 되었고, 히데요시의 관백 취임을 기념한 '금리 다회(禁裏茶會)'에서 오기마치 천황에게 차를 올려 '리큐 거사(居士)' 호를 하사받아 명실상부한 천하제일의 다인이 되었습니다. 히데요시의 동생 히데나가가 "사사로운 일은 리큐에게, 공적인 일은 재상(히데나가)에게"라고 말한 데서 리큐가 정권의 핵심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후 히데요시의 노여움을 사게 되어, 할복이라는 형태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다실 '다이안(待庵, 국보)'에서 보는 와비차의 완성
리큐가 완성한 와비차의 정신은 그가 설계한 다실 '다이안(待庵, 국보)'에 응축되어 있습니다. '다이안'은 리큐의 미학을 바탕으로 불필요한 것을 극한까지 덜어낸 두 장(畳) 크기의 다실입니다.
그중에서도 리큐가 특히 소중히 여긴 다도의 정신은 '니지리구치(躙口)'의 구조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니지리구치'는 입구가 좁고 낮은 위치에 있는 출입구입니다.
아무리 높은 신분의 무사라 해도 칼을 풀고 고개를 숙여 기어 들어가는 자세가 아니면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다회에 모인 모든 사람은 신분의 차이 없이 평등한 존재라는 것을 '니지리구치'가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무사 사회 속의 '다도'
노부나가는 가신들에게 다도를 장려했습니다. 허가를 받은 가신에게만 다회 개최를 허락하고, 무공의 포상으로 값비싼 찻잔을 하사했습니다. 명물 다기를 소유하고 다도에 정통한 것이 무사의 지위 상징이 되도록 유도한 것입니다.
그 결과, 명물 다기의 가치는 한 나라 한 성은 물론 무장의 목숨과도 맞먹게 되었습니다. 전투에서 유리한 위치에 선 노부나가가 적장에게 명물 차솥을 넘기면 목숨을 살려주겠다고 전했더니, 그 무장이 "차솥만은 내줄 수 없다"며 차솥에 화약을 넣고 자폭했다는 놀라운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다도는 무사의 지위 상징이 되었습니다.
일화를 통해 만나는 '센노 리큐'
리큐에게는 수많은 일화가 전해지며, 그 일화들이 센노 리큐라는 인물과 다도에 대한 사고방식을 전해줍니다.
와비차에서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
노부나가가 리큐에게 차를 내오게 했을 때, 리큐의 점다 방식이 간략해진 것을 알아챕니다. "왜 그런가?"라고 묻는 노부나가에게 리큐는 "옛 법대로 하면 요즘 사람들은 참을성이 없어 싫어할 것입니다. 그래서 간단한 작법으로 바꾸었습니다"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시대에 맞춰 와비차의 작법을 바꾸는 데 주저하지 않는 유연한 자세와, 와비차가 추구하는 미학과 대접의 마음이라는 정신성에는 일절 타협을 허락하지 않는 자세. 이 두 가지를 함께 생각하면, 리큐가 '와비차'에서 진정으로 중요시한 것이 무엇인지 보이지 않을까요.
나팔꽃 다회
어느 초여름 아침, 리큐는 히데요시에게 "나팔꽃이 아름답습니다"라며 다회에 초대합니다. 히데요시가 만개한 나팔꽃을 기대하며 와보니, 정원의 나팔꽃이 모두 사라져 있었습니다. 아쉬운 마음으로 다실에 들어선 히데요시의 눈에 들어온 것은, 도코노마(벽감) 빛이 스며드는 자리에 단 한 송이만 꽂혀 있는 나팔꽃이었습니다. 한 송이이기에 더욱 돋보이는 나팔꽃의 아름다움과, 그것을 절묘하게 연출한 리큐의 감각에 히데요시는 깊이 감탄했다고 합니다.
리큐 칠칙(七則)
제자가 "다도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리큐는 훗날 '리큐 칠칙'으로 불리게 되는 답을 내놓습니다.
"차는 맛있게, 숯은 물이 끓도록,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꽃은 들에 있는 듯이, 시간은 여유 있게, 비가 오지 않아도 우비를 준비하고, 함께하는 손님을 배려하라."
이에 제자가 "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라고 답하자, 리큐는 "그것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면, 제가 당신의 제자가 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당연한 것이야말로 어렵고,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리큐의 진지한 자세가 전해집니다.
카리스마 다인 '리큐'의 탄생
히데요시의 관백 취임을 기념한 다회에서 오기마치 천황으로부터 '리큐'라는 호를 하사받은 리큐는, 이후 '기타노 대다회(北野大茶湯)'를 주재하며 '천하제일의 다인'이라는 지위를 확고히 했습니다.
'기타노 대다회'는 히데요시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열린 다회로, 농민부터 높은 신분의 사람까지 신분에 상관없이 찻잔 하나만 있으면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히데요시, 리큐, 그리고 다른 두 명의 사토가 손님들에게 차를 대접했으며, 하루에 약 천 명이 참가했다고 전해집니다.
할복
히데요시의 명으로 할복한 리큐는, 마지막 순간의 행동에서도 다도의 정신을 관철했습니다.
히데요시의 "할복하라"는 명을 전하러 온 사자에게 리큐는 "다실에 차가 준비되어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차를 내어 대접한 뒤에 할복했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할복 전에 보낸 편지에는 이런 노래가 담겨 있었습니다. "마음마저 바위나 나무처럼 감정을 죽인다면, 이 도읍에서도 편히 살 수 있었을 텐데." — "저는 마음(다도의 정신)을 속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습니다"라는 심정을 시에 담아 보낸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