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조(茶祖)'라 불리는 에이사이. 하지만 일본에 처음으로 차를 들여온 인물은 에이사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에이사이가 '차조'로 불릴까요? 그 이유를 '선'과 '차'의 관계를 통해 풀어봅니다.
에이사이란
에이사이(1141~1215)는 십 대 때부터 천태종의 가르침을 배우기 시작했고, 선종을 더 깊이 익히기 위해 두 차례에 걸쳐 송나라를 찾았습니다. 귀국한 뒤에는 일본 임제종의 개조가 됩니다.
또한 송나라에서 차의 가치를 깊이 체감하고 그 씨앗을 일본으로 가져온 에이사이는, 임제종의 포교와 함께 차 재배법과 차 문화를 널리 전했습니다. 천태종의 탄압을 받는 가운데서도 임제종 보급에 힘쓰며 『흥선호국론』, 『일대경론석』 등의 저술을 남겼습니다.
'차조' 에이사이의 업적
선승 에이사이는 차와 선(禪)을 함께 일본에 뿌리내린 인물로, 그 두 흐름이 어떻게 하나로 이어졌는지 살펴봅니다.
차 문화를 일본에 들여와 널리 퍼뜨리다
차 자체는 에이사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일본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왜 에이사이는 일본의 '차조'로 불릴까요? 그 이유는 에이사이가 차 문화 자체를 처음으로 일본에 들여왔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이때 에이사이가 들여온 차는 중국에서 널리 즐기던 텐차(갈기 전의 말차)였습니다. 그는 그 제조법과 음용법을 일본에 전했고, 그전까지 마시던 병차를 대신해 텐차가 자리 잡으며 녹차 문화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이후 권력 교체 등의 영향으로 텐차가 점차 쇠퇴합니다.
또한 에이사이는 선종의 음다 예법인 '사레이(茶礼, 다례)'도 일본에 전했습니다. 수행 중간이나 잠들기 전, 하루에 몇 차례 한 주전자에 준비한 차를 나누어 마시는 방식입니다. 마음을 하나로 모아 수행에 임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습니다. 더 큰 행사에서는 참가자 전원이 한자리에 모여 차를 마시는 '총다례'도 행해졌습니다. 이 다례가 훗날 다도로 이어집니다.
본격적인 차 재배의 계기를 만들다
에이사이는 본격적인 차밭이 조성되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에이사이는 송나라에서 돌아올 때 차 씨앗과 차 재배에 관한 지식을 함께 들여와, 사찰에서의 차 재배를 널리 퍼뜨렸습니다. 차의 각성 작용이 선종의 엄격한 수행에 매우 유용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퍼진 차 씨앗과 지식은 교토 도가노오의 묘에 상인에게 전해졌고, 마침내 본격적인 차밭으로 발전합니다. 이 차밭에서 난 차는 '도가노오의 차만이 본차이고, 그 밖은 비차'라고 불릴 만큼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일본에 임제종을 널리 퍼뜨리다
에이사이는 선종의 한 갈래인 임제종을 널리 전하는 동시에, 차의 재배와 문화를 함께 퍼뜨렸습니다. 그렇게 차와 선은 깊이 연결되었고, 선의 사상은 이후 차의 역사를 만든 인물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무라타 주코와 잇큐 소준, 다케노 조오와 다이린 소토, 센노 리큐와 쇼레이 소킨. 이 차인들과 임제종 선승의 관계는 다도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축이 되었습니다.
일본 최초의 차 전문서 『끽다양생기』를 쓰다
에이사이는 차를 널리 알리기 위해 『끽다양생기』를 저술했습니다.
상하 2권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일본 최초의 차 전문서로, 송나라에서 배운 차의 의학적 효능에 관한 내용은 물론 재배에 관한 사항까지 자세히 담고 있습니다.
또 에이사이가 술을 과하게 마시곤 하던 쇼군 미나모토노 사네토모에게 숙취에 도움이 되는 약으로 차를 권하면서 『끽다양생기』를 바쳤다고, 『아즈마카가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헤이안 시대부터 가마쿠라 시대까지의 음다 문화
헤이안 시대의 차는 궁중의 종교 행사나 의식에서 쓰였습니다. 차는 승려와 귀족 계층만 마실 수 있는 특별한 음료였고, 약으로도 여겨졌습니다.
이후 차는 와카와 렌가를 읊는 자리에서 즐기는 음료로 조금씩 성격이 바뀌어 갑니다.
가마쿠라 시대에 들어서면, 에이사이가 중국에서 들여온 '사레이(茶礼, 다례)'라는 음다 의례가 선종 사찰에서 행해지기 시작했고, 한편으로는 무사 계층 사이에서도 차 마시기가 사교 수단으로 퍼져 나갑니다. 차를 마시기 위해 모이는 '차요리아이'가 열리기 시작했고, 가마쿠라 후기에는 차의 산지를 맞히는 놀이인 '도차'가 유행했습니다. 하지만 도차와 함께 도박도 성행해, 결국 막부가 도차를 금지할 정도로 열기가 커졌습니다.
일본에 차를 들여온 인물이 에이사이가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에이사이는 중국에서 배운 선과 차를 일본에 가져와 널리 전했고, 그 두 흐름을 하나로 엮어 오늘날의 다도로 이어지는 계기를 만든 인물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에이사이가 '차조'라 불리는 이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