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nts

무라타 주코로부터 시작된 와비차의 흐름을 센노 리큐에게 이어 준 인물 — 다케노 조오의 삶과 사상을 살펴봅니다.

다케노 조오란

다케노 조오(1502-1555)는 야마토국(현재의 나라현)에서 태어났습니다. 20대에 접어들면서 교토에서 살기 시작했고, 27세에는 당시 최고 수준의 교양인으로 꼽히던 산조니시 사네타카에게 고전과 와카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또한 무라타 주코의 계보를 잇는 다인에게서 차노유를 배웠습니다. 31세에 오닌의 난으로 황폐해진 교토를 떠나 사카이로 옮겨 살며 출가했고, '조오'라는 법명을 받은 뒤 차노유에 전념하며 와비차의 길을 추구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무라타 주코가 지향한 와비차

조오는 무라타 주코의 손제자에 해당합니다. 스승 주코가 발견한 와비차를 조오가 한층 더 다듬었고, 조오의 제자인 센노 리큐가 그것을 완성했습니다.

주코가 남긴 말을 따라가 보면 조오가 지향한 와비차의 근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물에 관한 말

주코는 '일본 것과 중국 것의 경계를 흐리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중국에서 들여온 기물만을 높이던 풍조에 맞서 일본 도자기가 지닌 소박한 아름다움에도 눈을 돌리는 일이 중요하다고 보았고, 차노유의 세계에 새로운 미의식을 가져왔습니다.

이렇게 주코가 남긴 다도구는 '주코 명물'이라 불렸으며, 그중 한 찻사발을 센노 리큐가 사용했다는 일화도 전해집니다.

또한 '달은 구름 한 점 없이 드러난 모습보다, 구름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편이 더 운치 있다'라는 말에서는 부족함의 아름다움을 소중히 여기는 새로운 차노유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이러한 미의식은 다실을 만드는 방식에도 영향을 주어, 주코는 다실을 네 다다미 반의 좁은 공간으로 나누고 장식을 덜어냄으로써 드러나는 아름다움을 지향했습니다.

마음과 정신에 관한 말

선의 영향을 받은 주코는 사물을 극한까지 덜어냈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아름다움을 추구했습니다. 그리고 사물의 부족함을 마음의 풍요로움으로 메우고자 했습니다.

차노유의 마음가짐과 정신을 중시한 주코는, 그 길에 가장 큰 방해가 되는 것은 교만과 자기 집착이라고 보았습니다. 아무리 실력이 늘어도 다른 이에게는 솔직하게 가르침을 구하고, 초보자에게는 수련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주코가 제자에게 보낸 글에는 '마음의 스승이 될지언정, 마음을 스승으로 삼지는 말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쉽게 흔들리는 마음에 휘둘리지 말고,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이 되라는 뜻입니다. 주코는 차노유를 마음을 다스리며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정신 수양의 장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다케노 조오의 와비차

조오는 무라타 주코의 흐름을 이어받아 와비차에 한층 깊은 정신성을 더한 인물입니다. 조오에게 영향을 준 두 사람을 살펴봅니다.

문화인 산조니시 사네타카

당대 최고의 문화인이었던 산조니시 사네타카에게서 렌가와 와카를 배운 일은 조오의 와비차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조오는 '렌가는 메마르고 스산해야 한다. 차노유의 끝도 그러하기를 바란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렌가에서 말하는 '차갑게 메말라 있음'의 감각을 차노유에 임하는 마음가짐으로 삼고 싶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차갑게 메말라 있음'이란 나무가 시드는 초겨울의 싸늘한 공기, 또는 그 안에서 느껴지는 맑고 단정한 마음 상태를 가리킵니다. 조오는 그런 마음으로 차노유를 대하고자 했습니다.

조오가 지향한 경지를 보여 주는 또 다른 노래는 후지와라노 데이카의 와카, '멀리 바라보니 꽃도 단풍도 이미 사라지고, 바닷가 초막에 가을 저녁만이 남아 있다'입니다. 가을이 깊어져 꽃과 단풍 같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풍경은 이제 이 해변의 초가에는 없다는 내용을 노래한 것으로, 바로 그 풍경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감각이 '부족함 속에서 만족을 알고, 삼가며 행동한다'는 와비차의 개념으로 이어집니다.

선승 다이린 소토

조오는 난슈지의 선승 다이린 소토에게서 선을 배우며, 차노유에 임하는 정신과 선의 정신을 이전보다 더욱 깊이 융합해 갔습니다. 그 흐름은 훗날 센노 리큐에 의해 '차선일미'라는 개념으로 완성됩니다. 차선일미란 차와 선은 겉으로 드러나는 수행의 모습은 달라도 본질에서는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며, 둘 다 인간을 닦아 가는 길이라는 뜻입니다.

무라타 주코에 이르러 차노유는 전국시대의 무상감 속에서 선과 연결되었습니다. 이어 다케노 조오에 의해 와카와 렌가의 정취를 더하며 더욱 세련되어졌고, 선의 '본래무일물(모든 것은 공하니 어떤 것에도 얽매여서는 안 된다)'이라는 정신을 향해 나아가 마침내 센노 리큐의 와비차 완성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