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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에 익숙하지 않은 분도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구타니야키(九谷焼).

화려하고 대담한 색채와 그림 장식은 한 번 보면 쉽게 잊히지 않습니다.

구타니야키란?

구타니야키는 이시카와현의 가나자와시, 가가시, 노미시, 고마쓰시에서 생산되는 도자기로, 선명한 색채의 다기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 궁내청이 해외의 저명인사와 왕실 인물에게 보내는 증정품으로 구타니야키를 사용해 왔으며, 영국 찰스 왕세자의 결혼 축하 선물로도 바쳐졌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일반인이 쉽게 접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미술품부터 생활용품까지 종류와 가격대가 폭넓습니다.

특징

구타니야키에는 여러 특징이 있지만, 특히 잘 알려진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도기와 자기, 두 가지 소재

일반적으로 도자기의 대부분은 도토(점토)로 만드는 '도기'와 도석(돌의 일종)으로 만드는 '자기' 가운데 하나로 분류되지만, 구타니야키에는 '도기'와 '자기' 두 종류가 있습니다.

도톰하고 따뜻한 느낌의 도기와, 얇고 가벼운 자기. 겉모습도 성질도 쓰임도 서로 달라 저마다의 장점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상회채

구타니야키는 '상회채를 말하지 않고서는 구타니를 논할 수 없다'고 할 만큼 일본을 대표하는 채색 도자기입니다.

상회채란 본소성을 마친 뒤 안료로 그림을 그리고, 약 800도의 고온에서 다시 구워 마무리하는 기법을 말합니다. 다시 구우면서 작품에 하나뿐인 표정이 더해집니다.

또한 구타니야키의 상회채는 '빨강, 노랑, 보라, 초록, 군청'의 색채를 사용하기 때문에 오채수(五彩手)라고 불리며, 화려하면서도 품위 있는 분위기로 소중한 사람을 위한 선물이나 축하 자리에도 잘 어울립니다.

구타니야키의 역사

구타니야키는 시대마다 이름과 특징이 조금씩 다르지만, 그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360여 년 전 에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전해집니다.

갑자기 자취를 감춘 에도 전기

구타니야키는 1665년에는 그 존재가 확인되며, 아리타에서 도예를 배운 고토 사이지로가 구타니촌에 가마를 연 것이 시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선명한 색채의 구타니야키는 수많은 명작을 낳으며 단숨에 화제가 되었지만, 탄생한 지 불과 수십 년 만에 갑자기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그 이유는 지금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습니다.

부활을 이룬 에도 후기

구타니야키의 가마가 문을 닫은 지 100년 뒤, 구타니야키의 발상지인 다이쇼지의 대상인 요시다야 덴에몬을 중심으로 구타니야키가 부흥합니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구타니야키를 '재흥 구타니'라고 부릅니다.

세계에 알려진 메이지 시대

1873년, 빈 만국박람회에 출품되면서 구타니야키는 '재팬 구타니'라는 이름으로 단숨에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그 뒤에는 채색 장인으로 이름 높았던 구타니 쇼자가 중심이 되어 만든 선명한 붉은 그림 장식의 구타니야키가 대량으로 해외에 수출되었습니다.

인간문화재가 탄생한 쇼와 시대부터 현재까지

쇼와 후기에는 그 아름다움 덕분에 미술품으로 제작되는 경우가 늘어났습니다.

전통을 소중히 여기는 구타니야키이지만, 시대에 맞추어 다양한 디자인이 유연하게 태어나기도 했습니다.

1997년에는 그라데이션 채색을 완성한 3대 도쿠다 야소키치가, 2001년에는 금박 장식을 비롯한 기법을 극한까지 다듬은 요시다 미노리가 인간문화재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전통을 소중히 지키면서 시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디자인과 기법을 받아들이며 꾸준히 진화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