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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홍차인 '실론티'의 발상지이기도 합니다.

스리랑카 차의 역사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차분히 따라가 봅니다.

스리랑카 차의 역사

스리랑카의 차 재배 역사는 인도나 케냐와 마찬가지로 영국의 식민지 정책 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스리랑카 차 생산의 역사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정리해 봤습니다.

한때는 커피의 명산지였을까?

오늘날에는 유명한 홍차 산지로 알려진 스리랑카지만, 원래는 세계적인 커피 산지로 더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당시 유럽에서 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던 네덜란드가 1658년부터 식민지 정책의 일환으로 스리랑카에서 커피를 재배했기 때문입니다.

커피는 강수량과 일조 시간이 충분한 곳에서 잘 자라는 작물이어서, 열대 기후의 스리랑카는 재배지로 알맞았습니다.

그 결과 스리랑카의 커피 생산량은 빠르게 늘었고, 19세기에는 커피 수출량이 세계 1위에 오를 만큼 대표적인 산지로 성장했습니다.

커피 농업의 종말과 홍차 생산의 시작

처음에는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던 스리랑카였지만, 1802년에는 지배국이 영국으로 바뀝니다.

그 뒤에도 스리랑카에서는 커피 재배가 활발했지만, 1868년 커피 농장에 '녹병'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녹병은 잎에 주황색 반점이 생기는 곰팡이성 전염병의 일종으로, 감염된 식물은 결국 말라 죽게 됩니다.

녹병으로 치명적인 피해를 입은 커피 산업은 쇠퇴했고, 그 대신 당시 영국에서 큰 인기를 끌던 차가 재배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스리랑카에 들어온 차 품종은 19세기 인도에서 발견된 아삼종이었습니다. 당시 인도 역시 스리랑카와 마찬가지로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었고, 차 생산지로서 대규모 플랜테이션 농업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스리랑카는 인도를 거점으로 삼은 차 산업의 생산력을 더 키우기 위한 토지로 선택되었습니다.

'립톤'의 발상지

앞서 본 것처럼, 스리랑카에서는 처음에 인도에서 들여온 아삼종이 재배되었습니다.

그 아삼종을 스리랑카에 들여온 인물은 '토머스 립톤'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홍차 브랜드 '립톤'의 창업자이기도 합니다.

그는 39세에 홍차 사업에 뛰어들어 실론섬의 차 농원을 모두 사들인 뒤 홍차 비즈니스를 시작했습니다.

사업 감각이 뛰어났던 립톤은 '차밭에서 곧바로 티포트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워 여러 나라에서 캠페인을 펼쳤습니다. 그 결과 '실론티'와 '립톤'이라는 이름은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