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 시대는 교쿠로의 개발과 일본차 수출의 시작 등, 일본차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기였습니다.
에도 시대 차의 흐름을 시대순으로 차분히 따라가 봅니다.
센차와 교쿠로의 개발
교토의 우지에서는 오래전부터 차를 재배해 왔는데, 16세기 후반에는 「차광재배」라는 독자적인 재배법이 생겨나 감칠맛이 강한 차를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다만 이 차광재배는 누구나 쓸 수 있었던 것은 아니고, 「오차시 산나카마(御茶師三仲間)」라 불린 한정된 직분의 집안만 사용할 수 있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런 흐름 속에서 센차의 새로운 제조법을 개발한 인물이 나가타니 소엔(1681〜1778)입니다. 그는 시행착오 끝에 겐분 3년(1738)에 「아오세이 센차 제법」을 고안했습니다.
아오세이 센차 제법이란 건조로 안에서 찻잎을 말리면서 손으로 비벼 만드는 제다법을 말합니다. 이 방법으로 기존보다 맛과 향이 한층 뛰어난 차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소엔이 이 차를 들고 에도로 갔을 때, 니혼바시의 차 상인이던 야마모토 가헤에가 이를 크게 칭찬했습니다. 소엔의 차는 야마모토 가헤에를 통해 판매되었고, 이후 제조법과 함께 각지로 퍼져 나갔습니다.
그리고 1835년에는 6대째 야마모토 가헤에가 「감로의 맛이 난다」고 평해진 차를 완성했고, 오늘날에도 사랑받는 「교쿠로」가 탄생했습니다.
에도 시대에 마시던 차는?
에도 시대에는 서민 사이에도 차를 마시는 문화가 널리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연구자 니시무라 도시노리 씨에 따르면, 서민이 즐기던 차의 종류는 차갈색 반차에서 황록색 녹차로 조금씩 질이 높아져 갔다고 합니다.
가정이나 신분에 따라 마시던 차에는 다소 차이가 있었겠지만, 큰 흐름으로 보면 이런 변화가 있었다고 보아도 무리는 없을 것입니다.
차 유통의 근대화
에도 시대는 도매상과 중개상, 소매상 등 오늘날에도 통하는 유통 형태가 발달한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차 제조법이 일본 각지로 퍼져 나간 데에는 이런 유통의 발달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또한 에도 시대 일본이 쇄국 정책을 취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만, 유일하게 나가사키의 데지마에서만 무역이 허용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차는 일본에 중요한 수출품으로서 대외무역의 기반을 떠받치고 있었습니다.
미국과 영국과 불평등 조약을 체결하던 무렵, 차는 181톤이나 수출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배경 때문에 메이지 시대에 들어선 뒤에도 차는 외화를 벌어들이는 중요한 수출품으로 여겨졌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