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로서 성공을 거머쥐었음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제다 기계 발명에 바친 다카바야시 겐조. 그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따라가 봅니다.
'제다 기계의 아버지' 다카바야시 겐조
생애와 이력
의학의 세계에서 차의 세계로
16세에 의학을 뜻하고 한방의학과 서양 외과술을 배워 의사로서 성공을 거둔 겐조. 그러나 메이지 시대에 접어들면서 당시의 무역 불균형을 걱정한 나머지, '차의 진흥이 급선무'라며 다원 경영에 뛰어들었습니다.
당시 모든 공정이 수작업이었던 재배와 제다 작업의 비효율을 개선하기 위해 기계화를 결심하고, 사재를 투자해 제다 기계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배차 기계', '생찻잎 증기 기계', '제차 마찰 기계'를 발명하고 특허를 취득했습니다.
역경 속에서 세상을 떠나기까지
겐조가 궁극적으로 목표한 것은 전 공정의 자동화였습니다.
54세에 의업을 폐업하고 개발에 전념합니다. 가까스로 완성한 '지리쓰켄 제다 기계'였으나 결함이 발견되어 반품이 잇따랐습니다. 경제적 곤경에 처했지만 굴하지 않고 이후에도 개발을 계속하여, 68세에 '찻잎 소유기'를 완성해 특허를 취득했습니다.
그 후 이 기계의 감사역으로 시즈오카에서 생활하다가, 1899년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발명가 다카바야시 겐조의 영광과 좌절
영광 - 민간 최초의 특허 취득
겐조가 '생찻잎 증기 기계', '배차 기계', '제차 마찰 기계'를 잇따라 개발한 같은 시기에 일본의 특허 제도가 시작되었습니다. 곧바로 특허를 신청하여 각각의 기계가 '특허 제2호, 3호, 4호'를 취득했습니다.
일본 특허 제1호는 궁내성 기사가 발명한 군함 도료였기에, 겐조는 민간 발명가로서 일본 최초의 특허 취득자가 되었습니다.
이후에도 개량 선풍기로 특허 제60호, 찻잎 유념기로 특허 제150호, 찻잎 소유기로 특허 제3301호를 취득했습니다. 겐조는 6건의 특허를 보유한 뛰어난 발명가였습니다.
좌절 - 지리쓰켄 제다 기계의 실패
겐조가 의업을 폐업하면서까지 개발에 전념하여 1887년에 완성한 것이 '지리쓰켄 제다 기계'입니다. 처음에는 정부의 지원으로 전국 차 업자를 대상으로 설명회가 열리고 주문이 쇄도했지만, 이후 불만이 잇따르고 이 기계로 제조한 상품까지 불량품으로 반품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화재로 자택을 잃는 불행까지 겹쳤습니다. 농상무성의 배려로 연구용 제다 공장을 마련했지만, 가정 경제는 극도로 궁핍한 상황이었습니다. 폐 질환을 앓으면서도 겐조는 기계 개발에 대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영광 - 찻잎 유건기의 발명
겐조는 '제다 기계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찻잎 소유기'는 제다업의 작업 형태를 크게 바꿔놓았습니다. 겐조의 기계는 그 원리와 구조가 오늘날에도 전국의 제다 기계에 사용되고 있는 훌륭한 발명입니다.
게다가 당시 차가 주요 수출품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본 경제에 공헌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대단한 발명이었습니다.
일본 제다업 - 기계화 전과 기계화 후
기계화 이전의 제다업
현재 다원에서 딴 생잎은 증기 → 소유기 → 유념기 → 중유기 → 정유기 → 건조기를 거쳐 제품화됩니다.
기계화 이전에는 이 모든 공정을 수작업으로 했기 때문에, 장인 1인당 하루에 3~5kg의 차밖에 만들 수 없었습니다. 그 결과 차 수출량 증가에 생산이 따라가지 못해 조악한 제품이 급증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제다의 기계화는 국가적 급선무였습니다.
기계화 이후의 제다업
겐조가 추구한 '기계화'란, 손으로 비비는 것과 다름없는 품질을 실현하면서 저비용으로 대량 생산하는 것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겐조는 전 공정의 자동화를 이루지 못했지만, 하유작업의 생력화에 크게 공헌했습니다. 메이지 초기 1만 톤이 채 안 되던 생산량이, 메이지 말기에는 3만 톤을 넘어서게 되었습니다.
겐조는 사람의 손작업을 충실히 모방하는 기계를 추구했기에 차의 품질이 저하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 증거로, 일본 최고의 차장인 오이시 오토조와 겐조의 '찻잎 유건기'를 겨루게 한 결과, 효율과 품질 모두 기계가 압승했습니다. 오이시 오토조 본인이 직접 이 기계를 구매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다카바야시 겐조의 생애를 알고 나면, 한 잔의 차에 담긴 '찻잎'의 아름다움이 한층 더 마음에 스며들지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