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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시대에 차는 중요한 외화 획득 수단으로서 대량으로 수출되고 있었습니다.

메이지·다이쇼 시대 차의 역사와 제조의 기계화, 그 흐름을 차분히 따라가 봅니다.

차는 일본의 주요 산업으로

메이지 시대부터 다이쇼 시대에 걸쳐 차는 일본의 중요한 수출 품목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계기가 된 것은 에도 시대에 서구 여러 나라와 수호조약이 체결된 일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나가사키 데지마를 무역 창구로 삼아 181톤에 이르는 차가 해외로 수출되었습니다.

그리고 메이지 유신 이후에도 차는 수출품의 중심적 지위를 계속 유지했고, 수출량은 2만 톤에 이를 정도였습니다.

오타니 가헤에의 공적

메이지 시대 차 산업의 발전에 가장 큰 공을 남긴 인물은 오타니 가헤에입니다.

원래 오타니는 요코하마 최대의 차 판매상이었지만, 메이지 27년(1894년)에는 일본제차주식회사를 설립합니다.

그는 수출용 차의 품질 관리를 철저히 했을 뿐 아니라, 미국이 차에 관세를 부과했을 때는 직접 미국으로 건너가 차 관세 철폐 운동을 벌이는 등 일본 차 산업의 진흥에 삶을 바친 인물이었습니다.

차의 기계화

일본에서 차가 중요한 외화 획득 수단이 되었다는 점은 앞서 살펴본 대로입니다. 하지만 당시 일본에는 급증하는 수요에 대응할 만한 제조 수단이 아직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메이지 시대에는 차를 효율적으로 생산하기 위한 기계화가 추진되기 시작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차의 기계화를 이끌며 큰 역할을 한 인물이 다카바야시 겐조입니다.

그는 원래 의사였지만, 훗날 제차업에 몸담은 발명가로 전향했습니다. 메이지 17년(1884년)에 호지차 제조기 등을 만들었고, 메이지 29년(1896년)에는 조유기를 완성해, 그전까지 손으로 비비며 하던 작업을 크게 효율화했습니다.

이 밖에도 수확 효율을 높이기 위한 손가위 등이 고안되면서, 수출용 차를 대량 생산하는 일도 조금씩 가능해졌습니다.

마키노하라 대지의 개척

시즈오카현은 오늘날에도 일본을 대표하는 차 산지이지만, 그 출발점은 메이지 시대 마키노하라 대지가 개간된 데 있었습니다.

원래 마키노하라 대지는 에도 시대 말기까지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였지만, 차 수출이 시작되고 수요가 커지면서 개간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 개간을 맡았던 사람들은 메이지 유신의 '사민평등'으로 일자리를 잃은 사족들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200명이 넘는 무사로 이루어진 '농업 초보 집단'을 이끌고 개척 사업에 나섰던 주조 가게아키는, 오늘날 마키노하라 차 생산의 기반을 닦은 인물로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황무지였던 마키노하라 대지의 개척은 매우 험난했고, 사족들은 익숙하지 않은 괭이질과 고된 노동에 지쳐 조금씩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뒤에도 그 일은 강을 건너는 인부들에게 이어졌지만, 역시 고된 노동과 빈곤을 견디지 못해 많은 이들이 중도에 포기했다고 전해집니다.

오늘날 저희가 시즈오카현의 좋은 차를 즐길 수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사람들의 고생과 노력 덕분입니다.

<관련 링크>

일본차의 역사 | 에도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