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수 뚜껑을 살짝 비켜 열면, 먼저 볶은 쌀 향이 올라옵니다. 김 너머로 퍼지는 것은 구운 쌀의 달콤하고 고소한 향. 푸른 찻잎의 향보다 한 걸음 앞서 다가와 부엌과 식탁의 공기를 문득 부드럽게 만드는 순간입니다. 현미차다운 시작이지요.
현미차는 오래전부터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차로 가까이 있었습니다. 식사에도 화과자에도 잘 어울리고, 뜨겁게 마셔도 차갑게 마셔도 마음이 잔잔해지는 맛. 다만 매일 마시는 차로 너무 익숙한 나머지, 어떤 배경에서 생겨났는지나 베이스가 되는 찻잎의 차이까지는 의식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는 서민의 차로 자라난 역사가 있고, 찻잎과 쌀의 조합에 따라 인상도 달라집니다. 카페인이 비교적 잔잔하게 느껴지는 이유와 끓는 물로도 맛있게 우릴 수 있는 다루기 쉬움까지 알고 나면, 현미차는 그저 고소한 차로만 남지 않습니다. 생활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알수록 흥미로운 한 잔입니다.
현미차의 유래
현미차의 배경에는, 찻잎만으로는 일상적으로 쓰기 어려웠던 시대의 지혜가 있습니다. 차에 볶은 쌀을 더해 양을 늘리고 향까지 즐긴 것. 그렇게 서민의 식탁으로 퍼져 나간 방식입니다. 처음부터 고급차라기보다 매일 마시기 위한 차. 어깨에 힘주지 않아도 되는 맛입니다.
이름에는 현미가 들어가지만, 실제로는 정백한 백미를 볶아 쓰는 제품도 적지 않습니다. 이름과 실제 사이에 약간의 어긋남이 있다는 점도 현미차의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쌀은 볶는 과정에서 군데군데 하얗게 튀어 오르는데, 그 모습 때문에 해외에서는 popcorn tea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전통적인 배합은 찻잎과 볶은 쌀을 거의 같은 비율로 섞는 방식입니다. 반반이 되면 차의 떫은맛과 쓴맛이 누그러지고, 쌀의 달콤한 향이 앞으로 나옵니다. 물을 붓는 순간 고소함이 부풀어 오르지만, 마신 뒤에는 무겁지 않은 그 균형이 현미차의 핵심입니다.
게다가 현미차는 무엇보다 향으로 먼저 마시게 되는 차이기도 합니다. 교쿠로처럼 감칠맛을 끝까지 밀어 올리는 차라기보다, 김 사이에 섞여 오르는 쌀 향으로 마음을 풀어 주는 한 잔에 가깝습니다. 오래 사랑받아 온 이유도 그 친근함에 있다고 저희는 생각합니다.
반차 베이스와 센차 베이스의 차이
현미차의 인상을 결정하는 것은 쌀만이 아니라 바탕이 되는 찻잎입니다.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반차 베이스 현미차와 센차 베이스 현미차입니다. 겉보기는 비슷해도, 물속에서 드러나는 표정은 꽤 다릅니다.
늦은 시기에 딴 일상용 찻잎인 '반차'를 쓰는 현미차는 산뜻해서 식사와 맞추기 좋습니다. 고소한 쌀 향이 앞에 나서도 무겁지 않기 쉽고, 가격도 비교적 부담이 적습니다. 가정의 기본 현미차로 사랑받아 온 차는 이 반차 베이스의 가벼움을 바탕으로 한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일본을 대표하는 녹차인 '센차'를 베이스로 하면, 고소함 뒤에 찻잎의 감칠맛과 단맛이 남습니다. 입안에 머금었을 때의 두께감이 있고 조금 더 단정한 인상입니다. 가격도 다소 올라가기 쉽지만, 쌀 향만으로 끝나지 않는 입체감이 있습니다. 간식 시간에 천천히 마시고 싶어지는 현미차입니다.
여기에 말차와 텐차를 다룬 글에서 언급한 말차를 더한 현미차가 되면, 선명한 초록빛과 감칠맛이 겹쳐집니다. 찻물 색은 밝아지고 향 속에는 말차 특유의 부드러운 풍미가 더해집니다. 보는 재미까지 있는 방식입니다.
저희가 나누어 마신다면, 아침 식사나 평소의 식사에는 반차 베이스, 마음을 조금 가다듬고 싶은 오후에는 센차 베이스, 손님을 맞이할 때는 말차를 더한 현미차라는 느낌입니다. 무엇이 더 위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장면마다 어울리는 향이 다릅니다. 그 넉넉함이 현미차의 깊이입니다.
현미차의 성분과 몸에 대한 이야기
현미차가 부드럽게 느껴지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카페인'(졸음을 덜 느끼게 하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성분)의 양입니다. 일본 식품표준성분표에 따르면 현미차의 침출액은 100mL당 10mg입니다. 센차의 20mg/100mL와 비교하면 약 절반 수준인데, 이는 찻잎과 쌀을 반반 섞는 방식과 관련이 큽니다. 자세한 작용은 카페인에 관한 글에서도 다루고 있지만, 물론 0은 아니어도 비교적 잔잔하게 즐기기 쉬운 차입니다.
쌀 쪽으로 눈을 돌리면, '감마오리자놀'(쌀겨에 많이 들어 있으며 콜레스테롤 흡수를 억제하는 작용으로 알려진 성분)과 'GABA'(감마아미노부티르산. 마음을 느슨하게 하는 쪽으로 알려진 성분)가 자주 언급됩니다. 특히 현미를 사용한 제품에서는 이런 쌀 유래의 개성이 더 이야기되곤 한다고 합니다. 다만 이름은 현미차여도 백미를 볶아 만든 상품이 많아서, 쌀 유래 성분의 정도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여기에 '비타민 E'(항산화 작용을 지닌 지용성 비타민)도 쌀에서 오는 매력으로 거론되고, 찻잎에서는 '테아닌'(차에 특징적인 아미노산으로, 차분한 이완감과 관련해 알려진 성분)도 추출됩니다. 현미차의 테아닌 양은 센차 그 자체보다는 적은 편이지만, 고소한 향과 약한 편의 카페인이 함께하면서 체감은 오히려 부드럽습니다. 식후에도,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은 시간에도 곁에 두기 좋은 한 잔입니다.
현미차는 약이 아니고, 느끼는 방식에도 개인차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카페인이 지나치게 강하지 않고 쌀의 고소함이 함께하기 때문에, 어린이나 임신 중인 분들도 비교적 고르기 쉬운 차로 이야기되곤 합니다. 양에만 조금 신경 쓰면 일상의 음료로 곁들이기 편하다는 점. 그것이 현미차의 매력입니다.
맛있게 우리기
뜨거운 물로, 짧게
현미차는 높은 온도에 강해, 끓는 물로 짧게 우리기가 기본입니다. 5인분이라면 찻잎은 큰술 듬뿍 2스푼, 약 15g 정도. 급수에 넣고 갓 끓인 물을 부은 뒤 20~30초 만에 따라냅니다. 센차처럼 낮은 온도에서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습니다. 쌀의 고소함이 금방 올라오고 떫은맛도 지나치게 나오기 어려워, 처음 우려 보는 분도 다루기 쉽습니다.
따라낸 뒤에는 마지막 한 방울까지 제대로 비워 냅니다. 이 '마지막 한 방울'(급수 안에 남아 있는 감칠맛이 진한 부분)을 떨어뜨리느냐에 따라 첫 번째 우림의 윤곽이 달라집니다. 찻잎이 물에 오래 잠긴 채로 남지 않게 하려면 꼭 필요한 동작이기도 합니다. 작은 차이지만 맛은 분명히 달라집니다.
두 번째 우림과 콜드브루
두 번째 우림도 충분히 즐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보다 아주 조금만 더 두면 볶은 쌀 향은 여전히 이어지고, 찻잎의 부드러운 감칠맛이 앞으로 나옵니다. 가족이 함께 돌려 마시는 식탁이라면 오히려 두 번째 우림 쪽이 더 차분해서 좋다고 느끼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찻잔에 따를 때는 농도가 치우치지 않도록 조금씩 번갈아 따라 주면, 어느 잔에도 향과 감칠맛이 고르게 들어갑니다. 집에서 여러 사람이 함께 마실수록 이 한 번의 손길이 살아납니다. 현미차는 편한 차이면서도, 손길에 솔직하게 반응하는 차이기도 합니다.
여름에는 콜드브루도 잘 어울립니다. 찬물로 천천히 추출하면 고소함이 잔잔하게 열리고, 마신 뒤 느낌은 한층 더 가볍습니다. 만드는 법은 콜드브루 차 우리는 법에 관한 글이 참고가 되는데, 현미차 역시 더운 날 곁에 두기 좋은 상비차가 됩니다.
저희가 FETC로서 현미차에 끌리는 이유는, 마음먹고 자세를 갖추지 않아도 마실 수 있다는 점입니다. 지나치게 고급스러워 긴장하게 만드는 차가 아니라 아침 식탁에도, 늦은 점심에도, 달콤한 간식 시간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듭니다. 고소함이 주인공이지만 지나치게 앞서지 않는 그 거리감이 좋습니다.
저희는 현미차가 매일 마시는 차를 조금 더 풍성하게 만드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급수 뚜껑을 열었을 때의 향, 끓는 물로도 편하게 우릴 수 있는 가벼움, 다 마신 뒤 입안에 남는 부드러운 여운. 이런 자연스러운 한 잔이야말로 식탁에 오래 남는다고 느낍니다.
참고한 자료는 문부과학성 일본 식품표준성분표 현미차 침출액, 와카사의 비밀 「현미차」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