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부 말기의 거대한 격변기, 시즈오카현의 마키노하라 대지는 지역 농민들조차 외면하던 황폐한 땅이었습니다. 그 땅에서 200명이 넘는 사무라이로 이루어진 '농사 초심자 집단'을 이끌고, 일본을 대표하는 차 산지 가운데 하나로 탈바꿈시킨 인물이 바로 주조 가게아키입니다.
주조 가게아키란
사무라이 시절
주조 가게아키는 1827년 에도 롯반초에서 하타모토의 서자로 태어났습니다. 13대 쇼군 이에사다를 섬겼고, 집안의 사무라이들에게 무술을 가르치던 검객이었습니다. 1867년 15대 쇼군 요시노부가 대정봉환 후 스루가(지금의 시즈오카현)로 옮겨 갈 때에는 정예 부대의 일원으로 경호를 맡았습니다. 이후 정예 부대는 임무를 마치고 해산되었고, 에도에서 메이지로 시대가 바뀌면서 막부를 잃은 가게아키와 동료 사무라이들은 인생의 두 번째 길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개간의 시작
가게아키는 '가나야하라(현재의 마키노하라 대지) 개간대'를 이끌고 마키노하라 대지 개간에 나서기로 결심합니다. 당시의 마키노하라 대지가 지역 농민들조차 포기한 황야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는 가쓰 가이슈에게 "이 땅을 제게 맡겨 주신다면 죽음을 각오하고 개간을 제 사명으로 삼아 평생을 바치겠습니다"라고 맹세했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42세의 주조는 '가나야하라 개간대'를 이끌고 개간을 시작했지만, 처음으로 아주 적은 양의 차 싹을 수확할 수 있었던 것은 개간을 시작한 지 4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만년
시대가 흐르며 관유지였던 땅을 개인이 사고팔 수 있게 되자, 개간대의 구성원들도 농민으로 남는 사람과 땅을 떠나는 사람으로 점차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가나가와 현령(지사) 자리를 맡아 달라는 요청도 있었지만, 그는 개간을 계속하기 위해 이를 사양합니다. 이후에는 생산한 차를 모아 공동 제다하고 수출품으로 만들기 위해 '마키노하라 제다 회사' 설립을 추진했으나, 사업 자금 청원이 기각되어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그는 굴하지 않고 한결같이 마키노하라 대지 개간에 생애를 바쳤으며, 1896년 69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주조 가게아키의 업적
탁월한 리더십
가쓰 가이슈, 야마오카 뎃슈 등 '막말의 삼주'라 불리던 시대의 지도자들과 교류하던 가게아키는, 그 자신 또한 뛰어난 리더였습니다.
당시 42세였던 가게아키가 이끈 '가나야하라 개간대'는 약 200명이었고, 가족까지 더하면 상당한 규모의 집단이었습니다. 게다가 개간대 구성원들은 신분이 높은 사무라이부터 노가쿠 배우까지, 다양한 이력을 지닌 '농사 초심자 집단'이었습니다.
이처럼 다채로운 '농사 초심자 집단'을 하나로 묶어 마키노하라 대지 개간이라는 큰일을 이뤄낸 가게아키의 리더십은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무사의 긍지와 함께 두 번째 삶을 마키노하라 대지에 바치다
쇼군의 신변을 지키는 '엘리트 관료'에서 개간과 차 재배라는 미지의 분야로 옮겨 가는 데 얼마나 큰 갈등이 있었을지는, 오늘의 저희에게도 어렵지 않게 상상됩니다.
뛰어난 리더였던 가게아키에게는 가나가와 현령(지사) 자리를 맡아 달라는 요청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한번 산에 오른 이상 무슨 일이 있어도 내려오지 않겠습니다. 차나무의 거름이 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말에서는 가게아키의 한결같은 마음이 전해집니다.
또한 평생 상투를 자르지 않고 무사의 긍지를 지닌 채 '마키노하라 대지 개간'에 몰두했던 가게아키의 장례식에서는, 그의 위업에 경의를 표해 가쓰 가이슈가 장례위원장을 맡았습니다. 더 나아가 가게아키의 죽음을 슬퍼한 개간대 구성원들이 21일 동안이나 무덤을 찾았다는 일화는 그의 인품을 떠올리게 합니다.
현재의 마키노하라 대지

신차 시즌이 되면 온 들판이 선명한 초록빛으로 물드는 마키노하라 대지이지만, 개간 초기에는 도쿄돔 약 42개 규모, 약 200헥타르에 이르는 물 공급조차 쉽지 않은 황야였습니다.
'가나야하라 개간대'는 그 땅을 도쿄돔 약 1,063개 규모인 5,000헥타르까지 개간해 거대한 차밭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가게아키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토지와 찻잎 개량은 거듭되었고, '심증 센차' 제법의 원형이 고안되는 등 사람들의 노력은 이어졌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에는 짙은 녹색 수색과 풍미 있는 맛이 매력적인 '마키노하라차'가 시즈오카를 대표하는 브랜드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에도에서 메이지로 이어지는 격동의 시대에, 인생의 두 번째 길을 걸고 미지의 분야에 도전한 주조 가게아키의 삶에는 오늘을 사는 저희가 배울 점이 많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