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타니 소엔은 일본 차의 역사를 바꾼 인물이에요. 저희가 오늘 익숙하게 마시는 센차의 바탕을 만든 사람으로, '청제 센차 제법'과 우지차 보급의 흐름을 함께 남겼어요.
나가타니 소엔이란?
나가타니 소엔은 오늘날 센차의 출발점을 만든 제다인이에요. 교토 우지타와라에서 태어나 청제 센차 제법을 고안했고, 우지차가 에도 시장으로 퍼지는 흐름에도 큰 역할을 했어요.
나가타니 소엔의 기본 정보
나가타니 소엔은 엔포 9년(1681)에 야마시로국(현재의 교토부) 우지타와라 향 유야다니촌에서 태어났어요.
나가타니 가문의 선조는 사무라이였지만, 분로쿠 원년(1592)에 유야다니의 땅을 개척해 다원을 열고 제다업을 하게 됐어요. 가업인 제다업에 종사한 나가타니 소엔은 농지 개량 등을 앞장서 이끄는 '마을의 리더'이기도 했다고 해요.
안에이 7년(1778)에 97세로 세상을 떠난 뒤에도 일본 녹차의 시조로 존경받으며, 생가에 인접한 다이진구 신사에 '차소묘진(茶宗明神)'으로 모셔져 있어요.
누구나 아는 그 기업과의 인연
나가타니 소엔이라는 이름을 듣고 '어딘가 익숙한데'라고 느낀 분도 있을 거예요.
나가타니 소엔은 '오차즈케 노리'로 유명한 '나가타니엔'과 깊은 인연이 있어요.
'나가타니엔'은 나가타니 가문 10대인 나가타니 요시오가 창업했어요. 창업 초기의 나가타니엔은 제다업과 센차도 도구 판매를 했지만, 1952년에 발매한 '오차즈케 노리'로 경영 기반을 굳혔어요.
지금의 나가타니엔 제품은 후리카케나 즉석 된장국처럼 차와 직접 관련 없는 것이 많지만, '오차즈케 노리'의 원재료에는 지금도 말차가 들어가요.
나가타니 소엔이 차에 남긴 업적
나가타니 소엔의 차 관련 업적은 크게 두 가지예요.
오늘날 센차 제법의 바탕이 된 '청제 센차 제법'을 고안했어요
당시 부유층은 가루차(지금의 말차), 서민은 달여 마시는 차(지금의 센차)를 마셨지만, 그 시절의 센차는 붉고 검은빛을 띠고 맛도 썩 좋지 않았어요. '청제 센차 제법' 덕분에 색이 좋고 맛있는 센차가 탄생해 널리 퍼졌고, 서민도 더 맛있는 차를 즐길 수 있게 됐어요.
우지차를 에도에서 판매하는 데 성공했어요.
일본 최대의 소비지가 된 에도에 주목해, 높은 연공과 다른 차 산지와의 경쟁으로 기울기 시작한 우지타와라의 차, 곧 우지차의 판로를 넓히는 데 성공했어요.
나가타니 소엔과 인연이 깊은 또 하나의 유명 기업 '야마모토야마'
처음 에도에서는 새 제법의 차를 높이 평가해 주는 차 상인이 없었다고 해요. 그런데 겐분 3년(1738)에 화지와 차, 다구를 취급하던 야마모토야마를 찾았을 때, 4대 야마모토 가헤이가 나가타니 소엔의 차를 마음에 들어 해 즉시 사들였다고 전해져요.
그 뒤 이 센차를 '텐카이치'라는 이름으로 내놓자 큰 인기를 얻어 에도에서 전국으로 퍼져나갔어요. 나가타니 소엔의 차로 막대한 이익을 얻은 야마모토야마는, 이후 매년 사례로 고반 25냥을 메이지 8년(1875)까지 나가타니 가문에 건넸다는 일화도 남아 있어요.
청제 센차 제법이란 무엇일까요?
청제 센차 제법은 찐 찻잎을 말리기 전에 비벼 색과 맛을 끌어내는 방식이에요. 이 공정 덕분에 예전의 어둡고 거친 차가 오늘날 센차처럼 선명한 색과 깊은 맛을 갖게 됐어요.
'청제 센차 제법' 이전의 차는 찻잎을 가열한 뒤 말려 마무리한 것이어서 색이 검고 맛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고 해요. 차 색 때문에 '흑제'라고 불렸어요.
소엔이 고안한 '청제 센차 제법'은 찐 찻잎을 말리기 전에 '비비는' 과정을 더한 방식이라 색이 더 아름답고 맛도 깊어졌어요. 차 색이 푸른빛, 곧 녹색을 띠어서 '청제'라고 불렸어요.
'청제 센차 제법'을 만든 나가타니 소엔이 없었다면, 오늘날 센차의 아름다운 빛과 맛을 즐기기 어려웠을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