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모토야마'의 야마모토 카헤와 그 업적
야마모토 카헤는 일본 차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다만 '야마모토 카헤'는 한 사람만을 가리키는 이름은 아닙니다. 야마모토 가문의 당주가 대대로 '카헤'를 이름으로 이어 왔기 때문입니다. 야마모토 가문의 역대 당주 가운데 초대와 4대, 5대, 6대 야마모토 카헤가 남긴 주요 업적을 살펴봅니다.
초대 야마모토 카헤, 야마모토야마의 시작
초대 야마모토 카헤는 야마시로국(현재의 교토부) 우지 야마모토무라에서 에도로 올라와 1690년 니혼바시에서 화지와 차, 다기 등을 다루는 '가기야'를 창업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야마모토야마'의 출발점입니다.
'가기야'의 상호는 이후 '가미야 카헤', '도류켄 카헤', '야마모토야 카헤', '야마모토야 카헤 상점'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그리고 1941년, 판매하던 인기 차의 이름을 따서 점포 이름을 '야마모토야마'로 정했습니다.
4대 야마모토 카헤, 야마모토야마의 도약과 '나가타니엔'
4대 야마모토 카헤의 시대에 '야마모토야마'가 크게 도약할 기회가 찾아옵니다. '청제 센차 제법'을 개발한 나가타니 소엔이 센차를 알리기 위해 야마모토야마를 찾은 것입니다.
다른 차 상인들에게는 주목받지 못했던 이 센차를 맛본 4대 야마모토 카헤는, 찻물 색의 아름다움과 깊이 있는 맛에 놀라 곧바로 사들이기로 결정합니다. 이 센차는 이후 '천하일'이라는 이름을 얻어, 에도는 물론 전국에서 큰 인기를 끄는 상품이 되었습니다.
이 일로 야마모토야마가 막대한 이익을 얻게 된 데 대한 감사의 뜻으로, 나가타니 가문에 고반 25량을 약 130년 동안 계속 보냈다는 일화도 전해집니다. 그리고 나가타니 소엔으로부터 10대째에 해당하는 나가타니 요시오가 '나가타니엔'을 창업하게 됩니다.
5대 야마모토 카헤, '사야마차'의 발굴
5대 야마모토 카헤는 지금의 사이타마현에서 재배되던 '사야마차'의 가치를 발견했습니다.
원래 차 산지였던 사야마에서는 당시 전국적으로 인기를 얻던 센차 제법을 본떠 차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5대 야마모토 카헤는 그 맛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제법에 관한 조언을 거듭했고, 그렇게 완성된 차가 '사야마차'입니다.
1819년에 매매 계약을 맺고 '서리꽃', '눈 속의 매화'라는 이름으로 판매하자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사야마차는 '시즈오카차', '우지차'와 함께 '일본 3대 차'로 불릴 만큼 성장했고, '맛은 시즈오카, 향은 우지, 마지막 한 수는 사야마의 맛'이라는 차따기 노래가 전해질 정도입니다.
6대 야마모토 카헤, '교쿠로'를 만들어 내다
6대 야마모토 카헤는 교쿠로의 제법을 고안한 인물로 전해집니다.
당시에는 어느 차 상인이나 이미 널리 퍼진 센차를 어떻게 차별화할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6대 야마모토 카헤가 교토(우지)를 찾았을 때, 제다 과정에서 찻잎을 이슬처럼 둥글게 덖어 보는 방식을 떠올린 것이 '교쿠로' 탄생의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교쿠로'는 부드럽고 품위 있는 풍미로 하타모토와 다이묘들 사이에서 평판을 얻으며 인기를 끌었습니다.
한편 이름의 유래에는, 교쿠로 특유의 감칠맛이 구슬 같은 이슬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또 메이지 시대에 오늘날의 형태인 막대 모양으로 교쿠로를 완성한 인물로는 쓰지 리에몬('츠지리' 창업자)이 거론됩니다.
